[사설] 대통령의 말
대한민국은 공산주의 국가가 아니고 자유민주주의 공화국이다. 헌법 제1조 ①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하지 않았지만 너무나 자명한 이치인 것이다.
대통령은 내치와 외치를 잘하여 나라를 부국강병 시켜야 할 막중한 책무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 말 한마디 한마디가 신중하고 신중해야만 한다. 국론을 분열시키는 말은 자제하고 국론을 통일시키는 데 온 힘을 기울여서 국민의 화합과 통합을 이루어 안으로는 평화와 안정을 가져오고 경제부흥 뿐만 아니고 헌법의 명령대로 평화통일에 힘써야만 한다.
대통령의 말 한디는 사회적 파장이 매우 크므로 그 표현한 말로 결과가 어떠하리라는 것을 예상하여 국민이 분열되고 논란이 될 것이 뻔한 말은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삼척동자라도 아는 사실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현충사(顯忠辭)에서 김원봉에 관한 말을 했다. 김원봉에 대해서는 지금 논란이 심하다. 김원봉의 항일행적에 대해서는 우리의 국사책에 의열단원으로 소개되기도 한다. 항일행적의 공로로 소개되었을 뿐 그 이후의 행적에 대해서는 물론 언급이 없다.
남북협상때 월북하여 북에서 여러 요직을 거쳤기 때문이다.
김원봉은 조국의 광복을 맞이하여 해방된 조국에서 수모를 겪고, 월북했다가 숙청당했다고 전해진다.
1947년 2월에 김원봉은 ‘남로당이 주도한 파업에 연루되었다’는 죄목으로 친일경찰 출신 노덕술에게 체포돼 갖은 수모를 당한다. 종로경찰서 형사로 있으면서 숱한 독립운동가들을 잡아들여 악랄하게 고문했던 노덕술. 그는 김원봉을 ‘빨갱이 두목’이라고 부르면서 뺨을 때리며 모욕했다.
의열단 동지였던 유석현 선생의 회고에 따르면, 노덕술에게 수모를 당하고 풀려난 김원봉은 사흘을 꼬박 울며 “여기서는 왜놈 등살에 언제 죽을지 몰라”라며 한탄했다고 한다.
그러다 같은 해 7월 19일에는 김원봉과 함께 좌우합작운동을 주도하며 통일정부수립을 위해 움직이던 여운형이 서울 혜화동에서 암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평소 여운형을 따르던 김원봉에게 이 사건은 매우 큰 충격으로 다가왔지만, 이내 마음을 가다듬고 좌우합작운동에 헌신하려 노력한다.
그러나 김원봉은 친일파와 우익정치깡패들의 테러에 시달리게 되고, 계속해서 거처를 옮겨 다니는 신세가 된다. 이러한 신변의 위협이 계속되자 김원봉은 1948년 남북협상에 참여했다 서울로 귀환하지 않고 월북하기에 이른다고 전해진다.
월북 후 김원봉은 국가검열성상, 노동상,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중앙위원,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직 등의 최고위직을 두루 역임한다. 그러나 납북된 조소앙, 안재홍 등과 함께 중립화를 통해 외세의 간섭에서 벗어나 민족의 단결과 통일을 이루어내자는 ‘중립화 평화통일방안’을 주장하면서 김일성의 눈 밖에 나기 시작한다.
그러던 1958년 11월, 김일성이 중국 연안을 중심으로 항일투쟁을 했던 ‘연안파’를 대대적으로 제거할 때 김원봉 역시 이들과 함께 숙청 당한다.
백범 김구 보다도 일제가 현상금을 더 걸었던 일제가 가장 두려워했던 독립운동가 김원봉. 하지만 현재 그를 기억하는 기념사업회나 관련단체가 하나도 없어 임시정부 기념사업회와 안중근의사 기념사업회 등의 항일운동기념단체들이 대신 그의 독립운동 서훈을 추진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모든 것을 버리고 오로지 조국의 진정한 독립을 위해 살았던, 그러나 남과 북 모두에게 버림받은 비운의 독립운동가 약산 김원봉. 산처럼 크고 높았던 그의 삶을 이제라도 우리 모두가 기억해줘야 하지 않을까라며 어느 한편은 김원봉에 대한 평가를 다시하자는 동정론을 펴고 있고
또 한쪽에선 북의 남침에 기여했으니 그런 자에게 건국훈장을 어찌 추서할 수가 있냐는 비난론이 세다.
아직도 좌우 이데올로기 대립이 있는 통일되지 않은 우리나라로서는 김원봉에 대해 그 행적의 평가가 이른 것 같다. 통일 후 후대에 가서 그 평가가 이루어져야 국민적 합의에 이를 것 같다.
김원봉에 대한 논란은 이렇듯 국론이 분열될 정도로 시끄러운데 한 나리의 지도자로서 대통령이 말 한마디의 영향이 어떠하다는 것을 예상하지 못하고 공식석상에서 말했다는 것인지
지금 국내의 정치적 상황과 민생과 경제 그리고 국제상황에 대해 대통령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패스트 트랙’으로 촉발된 공전 중인 ‘동물국회’, ‘실종 경제’라는 국민의 원성, 만연한 ‘청년실업’, 여당과 제 1야당의 영수회담 불통, 4월 현재 최대 재정적자, 미일간의 확장적 밀월 군사동맹 강화, 한일간의 군사동맹 거부로 미·일·인도·호주의 태평양 군사동맹 움직임,
중일간의 관계정상화 선언, 트럼프의 노골적인 ‘일본해’ 발언, 일본 참의원 위원장의 협박성 발언인 G20정상회담에서 한일정상회담개최의 불투명 등 산적한 현안만 하더라도 골치가 아프다.
국제정세와 국내 정치상황이 그러한 데 꼭히 그런 말을 현충일 식사(式辭)에서 했어야만 했을까. 또 큰 논란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상은 못 했을까
얼마 전인 6월 4일에는 청와대가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국가 유공자·보훈 가족과의 오찬행사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이 악수하고 있는 모습의 사진 책자를 그대로 나눠 주었다는 데 천안함 폭침과 제 2연평해전·연평도 포격으로 유족이 된 자들의 심정은 어떠 했겠는가.
들리는 바에 의하면, 유족들이 그날 격노했다고 한다. 북한에 사과 한마디 요구는 못하고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의 악수하는 사진이 있는 책자를 나누어 주었기 때문이었다. 유족들의 실망은 매우 컸다.
지금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지도자인 대통령은 어떠한 언행으로 국가와 국민을 영도해 나가야 하는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의 대통령 취임사를 다시 한번 되새기길 바란다.
|